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델 라모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팡가시난 주의 명문 가문 출신이다. [[스페인인]]과 [[화교]]가 혼혈된 차이니즈 메스티소 혈통.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 직후인 1950년 6월 결핵으로 한쪽 신장을 절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원해서 [[6.25 전쟁]]에 참전해서 1952년 1월 전선에 배치된 그는 그해 5월 강원도 철원의 '이어리(Eerie) 고지'에서 벌어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기도 했다. 그 뒤에 [[베트남 전쟁]]에도 참전했다, [[대장(계급)|대장]]까지 승진한 [[군인]] 출신의 [[정치인]]이다. 10대 대통령인 [[페르디난드 마르코스]]의 [[6촌]] 동생이었지만 마르코스의 [[독재]]를 타도하기 위해 민중봉기에 참가했다.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이 되자 육군 참모 총장으로 승진하게 된다. 피델 라모스 본인도 1992년, [[라카스 민주당]]의 대선후보로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. 당선 후 필리핀 공산당을 합법화하고 모로민족해방전선 등 반군 인사들을 사면시켜 이념/민족분쟁 종식 발판을 마련했고, '필리핀 2000'이란 경제회복계획을 마련해 경제 성장과 범죄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고 경제 성장이 어느정도 이뤄지기도 했다. 폐지된 [[사형]]제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. 다만, 임기 말에 [[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]]가 발생하여 약간의 타격을 받았다. 이후 두테르테 정부 아래에서 주중 필리핀 대사를 역임했다. 정치적으로는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. 2022년 3월,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온라인으로 오픈했다. 그리고 같은 해 7월 31일 [[코로나19]] 합병증과 심장병 및 치매로 사망했다. 7촌 조카인 [[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]]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며 8월 9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